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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체결된 한불조약 이후 당시 제물포로 불리던 인천에는 1889년 7월 1일 파리외방전교회의 빌렘(한국 이름 홍요셉)신부가 파견되어 제물포교회(현 답동성당)를 창설하고 포교활동을 시작했다. 빌렘 신부는 답동 언덕 일대의 일부 부지를 기증받아 성당건축에 힘썼으나 곧 신학교로 떠나게 되어 성당건축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현재의 건물이 세워진 것은 제3대 서요셉 신부 시절인 1897년 7월이다. 신도가 나날이 급격하게 증가하자 제4대 드뇌(Eugene Deneux 전학준)신부는 보다 넓은 공간이 필요하여 1934년 확장공사를 시행하였다. 이 공사는 기존 성당 건물의 외벽을 벽돌로 쌓아올리는 난공사였기 때문에 무려 4년 2개월만인 1937년 6월 30일에 연면적 1,013.8㎡(307.2평)의 성당이 준공되었다. 그 후에도 개축공사를 하면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변형되었으나 비교적 옛 모습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의 평면은 십자형으로, 붉은 벽돌을 주재료로 하여 중요한 곳에는 화강암을 사용하였다. 건물 중앙에 큰 탑을 두고 경사진 지붕으로 날개를 달고, 끝부분에 장식적인 작은 탑을 두고 있는데, 이 모습은 20세기 초에 지어진 우리나라 교회 건물의 보편적 형식이다.
(2008년 인천근대문화유산 방문교육 교재 중)
   
 
 

1890년 성공회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전파된 후 1893년 영국인 왕란도 신부가 강화읍 갑곶리에서 회당 겸 사택을 매수하고 이곳에서 전도를 시작하였다. 그 후 왕란도 신부는 본국으로 귀국하고 1896년 조마가 신부가 부임하여 전도하였다.
1897년에는 영화원이라는 보육원을 개설하고 서양 의술로 많은 환자를 치료하였으며 1900년 이곳에 현재의 한식 중층건물을 완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식 건물의 성당은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로 종교적 가치 및 역사성이 높고 건축적 특이성 면에서의 관광자원적 가치도 높다.
(재미있는 인천의 문화재 기행 중 / 200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