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문화칼럼

모델하우스는 건축이 아니다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실제 아파트가 들어설 부지의 한 모퉁이에 가설건축물 형태로 지어지던 것이 이제는 도시의 한복판을 차지하고 들어서거나 여러 건설사의 모델하우스가 밀집하여 작은 타운을 형성하기도 한다.


1:1 모형의 집, 모델하우스는 법규상 3층 이내로 ‘설치’되는 조립식구조의 가설건축물이다. 따라서 철근콘크리트와 같은 습식 구조로는 짓지를 못하게 되어 있다. 철거를 전제로 하는 임시건물이라는 뜻이다. 대신 각종 도시계획법이나 건축법규의 적용을 받지 않음으로써 일반 건축물에 요구되는 용적률이나 건폐율, 사선제한, 미관지구 규정 등으로부터 자유롭게 외관의 조형에 신경을 쓸 수 있다.


구조에 대한 제약도 상대적으로 낮아 목구조의 트러스나 벽식 구조로 짓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외관재료도 합판을 붙이고 그 위에 페인트를 칠해서 마감을 하거나, 석재나 금속판을 붙여서 위장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모델하우스의 화려한 위용에 사로잡혀 현실과 허상의 차이를 분간하지 못한다. 실재보다 과장된 실내 층고는 종종 안내자의 멘트로 대신하여 방문자가 알아서 목측(目測)으로 조정해줄 것을 강요하기도 한다. 각 평형별 현관입구의 높은 층고와 좌우로 오픈된 바닥면적은 앞으로 지어질 모든 세대의 현관홀의 이미지로 복제되며 신비한 세계로의 접근을 유도한다.


“모델하우스는 분명 일시적이고 탐욕적이며 자본에 의해 소비되는 독창성 없는 한국건축을 위장하기 위해 만든 시뮬라크르입니다. 멀쩡한 여염집 아낙네를 복부인으로 만드는 공간적 장치이며, 상업성이 우아한 문화강좌와 전시회 형태로 나타나는 배경이지요. 또한 건축이 일종의 소비재처럼 포장, 진열, 광고되어 소비되는 한국특유의 매커니즘을 가동하는 기계이기도 합니다.”


LKH는 각 건설회사가 만들어낸 브랜드 전략에 따라 모델하우스의 외부형태를 차별화하려고 노력하지만 사실은 저들이 선보인 외관형식은 공통적으로 아파트의 외관과 무관하거나 철저하게 배제된 이미지를 생산하여 고객의 환심을 사는 데에 급급 한다고 말을 이었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튀는 외관과 튀는 내부 공간으로 승부하는 모델하우스는 상스럽게도 먹튀의 건축공간에 다름 아니다. 건설사들의 무차별적인 자극의 공세에 반응해온 소비자들 또한 장식으로 가득 찬 건축공간의 허영에 익숙해져 어지간한 디자인에는 쉽사리 감동하려들지 않는다. 학습의 효과가 큰 탓이다.


모델하우스의 근원이 ‘선분양제’의 아파트 공급방식을 고집해온 한국 특유의 부동산 정책의 부산물이란 것쯤은 이해해두자. 건설사들은 소비자의 돈으로 아파트 공사를 강행하자니 실물공간을 보여줄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자연스럽게 타사와의 경쟁이 모델하우스로부터 비롯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송도국제도시 더 프라우 모델하우스)

부동산 투기자본의 심볼이며, 욕망의 해방구이기도 한 모델하우스도 단순히 분양평형의 전시장의 성격에서 일탈하여 주택문화관으로의 변화를 꾀하며 지역사회의 문화 인프라로 깊숙이 발을 뻗는 것이 일반화된 경향이다. 자본력의 크기에 좌우되는 이 같은 경향으로 말미암아 아파트 건설시장에서 중소업체가 섣불리 모델하우스를 운영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그들 다수는 IMF를 지나오며 시장에서 대부분 정리되었다. 바야흐로 아파트 건설시장은 TV광고와 중앙일간지 광고 지면을 채울 수 있는 미디어의 대리전 양상으로 성격이 전화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모델하우스 또한 미디어로서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최근 서울과 지방 대도시를 중심으로 등장하고 있는 모델하우스의 디자인은 가히 현대건축실험의 증식로라 불릴만하다. 유행의 최전선에서 최고급 주거공간의 상품화를 매개하는 인큐베이터에 감각적인 국내 젊은 건축가들이 탑승하고 있는 꼴이다. 이전까지는 익명의 모델하우스 전문업체가 독점해왔던 업역에 건축가들의 디자인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한국건축의 무의식과 욕망의 표상이라고 일갈하는 LKH의 다음 말은 의미심장하다.


“모델하우스의 기호는 그것의 미래적 실체가 절대 소유할 수 없는 욕망을 표상한다는 측면에서 경제적으로는 달콤할지언정 결코 그 미학적 열매는 쉽게 삼키기 힘든, 한국주거문화의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예고하는 부정과 퇴행의 징후들입니다.”


송도국제도시 업무지구 내에 조성된 아파트 모델하우스 밀집지역도 같은 시선으로 들여다볼만하다. 현재 국내 아파트 및 오피스텔 분양시장의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송도불패’ 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현장에 들어서 있는 모델하우스는 최근 전국적으로 불거지고 있는 건축미학의 실험적 무대의 분위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곳에도 건축가이며 이론가인 로버트 벤츄리가 설파하고 있듯 상업자본의 포장재로서 나타난 현대건축의 포스트 모던적 징후를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기업의 브랜드가 건축을 압도하는 ‘장식된 헛간’의 유형을 보여주는 더 프라우의 모델하우스는 상징적이다. 그것은 건축이 자본과 타협하여 거둔 비윤리적인 도시기호로서 송도국제도시의 이미지를 표상한다.


그나마 포스코건설의 모델하우스는 외관의 형식이 사진의 배경으로 보이는 더샾 1차 주상복합아파트의 입면 패턴과 유사점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선 고무적이다. 그러나 2차, 3차로 송도에 건립예정인 더샾 브랜드의 주상복합아파트들은 현재의 모델하우스 외관과 다른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LKH는 모델하우스야말로 ‘부재(不在)와 결핍(缺乏)의 건축’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실재하지만 건축이 아니다. 단지 3차원 공간으로 설치된 기호일 뿐이다. (계속)
격월간 건축리포트<와이드>발행편집인, 건축비평가

등 장 인 물

LKH(실명-이경훈): 국민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와 파슨스 디자인 학교에서 수학했다.


1993년 뉴욕주 건축사 면허를 취득했고, 2003년부터 국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브컬처와 도시문제에 관심이 크며, 디지털건축과 사이버공간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인천환경미래관 현상설계, 헤이리 갤러리 등의 작업을 했다.


댓글 0

"모델하우스는 건축이 아니다"의 첫댓글을 달아주세요!

댓글 쓰기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 모델하우스는 건축이 아니다 2008.09.11 3345
565 인천예고 정기연주회 유감 2008.08.01 2938
564 예전 문화칼럼(2001년 ~ 2007년) 보기 2008.07.23 2909
563 불멸의 건축을 이끈 건축가, 이희태 (17화) 2008.07.23 2804
562 베이징올림픽의 빛바랜 건축아이콘 2008.08.13 2609
561 인천의 영단(營團)주택 2008.07.23 2563
560 광고로 보는 인천 근대 2008.08.05 2315
559 송도디오아트센터, 인천판 ‘평창동 미술동네’ 2008.07.24 2252
558 33화> 월미산 전망대, 구조적 모험이 결여된 타워 2008.08.14 2206
557 34화> 이토타워 꼬르띨레 ‘안뜰의 공간시학’ 2008.08.28 2202
556 집은 지붕부터 짓지 않는다 2008.07.26 2178
555 건국60주년과 독도, 그리고 도광양회(韜光養晦) 2008.08.08 2165
554 마에스트로와 '인천&아츠' 2008.08.05 2156
553 도원야구장 2008.08.19 2152
552 월미도의 해수탕, 조탕(潮湯) 2008.07.23 2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