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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반다방

매실을 담그며 - 황흥구 (경인방송 90.7임주연의신바람라디오)


매실을 담그며

황 흥 구


매실 담그는 철이 다가 왔나보다. 아내는 며칠 전부터 안절부절 못해 야단이다. 몇 년 전부터 이맘때면 겨울철 김장하듯 매실 담그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렸다.

인공조미료를 쓰지 않고서부터 매실을 담가야 그 원액으로 김치도 담그고, 고기 재우는데 쓰고, 음식에 설탕 대용으로 쓸 수 있다면서 담그기 시작했다. 굳이 남편위해 담근다는 소리는 안하면서도 페트병 한가득 채워서 냉장고에 넣어두기도 한다. 그때부터 마시기 시작한 것이 어쩌다 떨어지기라도 하면 아내에게 채근하기 바쁘다. 피로회복에 좋다고 하지만 과음한날 아침에 컵 반에 물 가득 넣고 타 마시면 갈증도 해소되고 술도 깨 아침저녁으로 한잔 씩 먹는 게 일상화된 지 오래다.

며칠 전 휴일 아침에 아내는 뜬금없이 ‘오늘은 농산물시장에 가서 매실이나 사러 갑시다.’ 하기에 ‘오늘은 당신도 아는 우리친구 아들 결혼식에 가봐야 하지 않아? 다음에 가지 그래’ 하고 집을 나섰다.

부득이 아내는 농산물시장에 혼자 가서 매실을 사왔다. 오후 느지막 집에 혼자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집 앞이니 얼른 내려와 매실이나 가지고 올라가라는 것이었다. 내심 ‘끝까지 부려 먹으려나보다’ 하며 내려갔더니 차에서 주섬주섬 내리는 것이 혼자서는 도저히 운반할 량이 아니었다. 큰 매실 두 자루에 양파 한 자루, 감자, 무, 수박 한통까지 한 짐은 족히 넘었다. 매실만 사려다가 오후 끝장에 떨이 한다기에 이것저것 샀다는 것이다. 둘이서 양손에 들고 몇 번이나 옮겨야했다.

그날 저녁 미안한 마음에 아내가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 꼼짝없이 할 수 밖에 없었다. 함지박 가득히 매실을 쏟아 붇더니 매실 꼭지를 떼어야 한다는 것이다. 별것 아니다 싶어 TV를 보면서 꼭지에 붙은 가지만 골라 땄더니 아내가 보더니 일일이 속에 붙은 꼭지 까지 후벼 파야 쓴맛이 안 난다는 것이다.

무려 두 시간 이상을 꼼짝 않고 앉아서 했더니 손끝은 물론 허리까지 아파왔다. 아내는 겨우 그걸 갖고 그러느냐며 밤늦도록 자기 몸 반만 한 항아리를 끙끙대며 베란다에 옮겨놓고 두 함지박이나 되는 매실을 일일이 세척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물기가 있으면 곰팡이가 생길 수 있다며 하루 종일 잘 말려야한다는 것이다. 그것 뿐 아니다. 매실 량만큼의 설탕을 켜켜이 뿌려대고 약 3개월 동안 어린애 돌보듯 돌봐야 좋은 매실 원액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동안 아무생각 없이 벌컥벌컥 마셔 댄 매실 액이 이런 과정을 거쳐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언젠가는 꼬막조개가 식탁에 올라와 맛있게 먹은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그것 또한 삶아 까서는 양념을 한 다음 다시 껍데기 속에 일일이 넣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었다. 쉽게 먹지만 보통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아내한테 다음부터는 다신 하지 말라고 당부해도 ‘아니 다행이요’ 한마디로 위안 삼을 뿐이다.

비단 이것뿐만 이겠는가? 정말 아내가 가족들을 위해 하는 일은 너무나 많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음식타박도 해왔고 남들 다하는 일이라고 하찮게 여겼던 일들이 이렇게 힘든 정성을 쏟아야 된다는 사실에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 부끄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 담근 매실 액은 매일 마실 때마다 아내의 고생과 정성을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마실 것이다. (1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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