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촌 할아버지  사시던집 - 78.5x 53 cm 종이 위에 먹 펜>


1960년대초 기억입니다. 백령 진촌리 886 할머니 집 옆에 작은 초가집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두 가구가 사셨는데, 왼쪽 문으로는 이모 할머님네가 오른쪽문은 오촌 할아버지 내외가 사셨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사촌 시동생이셨는데 등에 혹이 있어 굽어지신 자그마한 체구이셨습니다. 두 분 내외는 슬하의 소생이 없이 사셨습니다.

 


<할머니집과 오촌 할아버지 집은 빈집인 채로 잡초와 쓰레기더미만 뒹굴고 - 54 x 39 cm  종이위에 수채>

 

그래서인지 내가 방학이 되어 섬에 들어가면 오촌 할머니는 저를 아주 반가워해 주시며 예뻐해 주셨습니다. 섬에 마땅히 사 주실 먹을거리가 없었던 오촌 할머니는 당시 귀한 양식이었던 보리쌀을 바가지에 퍼 담아서는 활짝 웃으시는 얼굴로 “아가다야 이리 오라므나!” 하시며 손짓을 여러번 저어 나를 불러내셨지요.
 

그리곤 나를 데리고 동고몰을 지나 하늬바다 근처 밭두렁을 걸어 참외밭 원두막으로 가셨습니다. 보리쌀을 주고 개구리 참외와 바꾸신거죠. 그리고 내 손을 꼬옥 잡고 좋아하시며 다시 그 들길을 걸어 집으로 오셨습니다.
 

초가집 작은 방으로 들어가 몰래 그 참외를 깍아 주셨는데, 그 맛은 너무나 꿀맛이었지요. 왜 몰래 깍아주셨을까요? 오촌 할머니는 사촌동서형님인 우리 할머니를 어려워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나의 친할머니는 체구가 크셨는데 동서가 살림 못한다고 가끔 야단치시는 것을 보았지요.



<동고몰을 넘어 오촌 할머니와 걸어가던길 - 135 x 25cm  종이위에 수채>


<하늬바다 가는 길을 걸어가면 참외밭이 나왔는데... - 54 x 39 cm 종이위에 수채>



우리 할머니께서 순박하게 잘 웃으셨던 그 오촌댁을 데려다 몸이 불편한 사촌 시동생과 살도록 집 옆 공터에 초가집과 대장간을 마련해 주셨답니다.
 

나는 오촌 할아버지가 뜨거운 불 화덕 앞에서 쇠를 녹이느라 등이 굽어 왜소한 몸에 땀을 뻘뻘 흘리시며 일 하시는 모습이 참 안쓰럽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쇠망치로 불에 달군 쇳조각을 땅!땅! 두드려 낫도 만드시고 호미도 만드시는 할아버지의 그 놀라운 재주가 어린 내 눈으로 참 신기했습니다. 동네 아저씨들이 연장을 맡기러 오면 얼른 불 옆에 나가 구경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오촌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옆에 있으면 더욱 신나게 일하시는 듯 보였습니다.

 

오촌 할아버지네가 사시는 방에 들어가면 볏집으로 이은 멍석같은 돗자리가 깔려있어 무슨 풀냄새, 흙벽냄새, 할아버지께서 피우시는 담배 냄새 등이 뒤섞인 오묘한 냄새가 기억납니다.


오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그 초가집은 다른 친척분이 오셔서 다시 집을 짓고 85년도까지 사셨습니다. 그러다 인천으로 이주하시면서 빈집이 되었는데, 아직 그 집은 남아 있답니다.

 

<할머니께서 자식들을 위해 온갖 채소를 가꾸시던 삼밭 - 54 x 39 cm 종이위에 수채>


<변씨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삼밭에 말뚝과 철조망을 쳐 놓아...  - 29 x21 cm 종이위에 먹 펜>


그런데 그 집은 기구한 운명처럼 볼품없이 망가진 채 비닐로 막은 창문이 이리 저리 찢겨져 바람에 펄럭이고 있습니다. 더 속상 한 것은, 그 집 앞을 누군가 철조망을 쳐 놓고 말뚝을 박아놓았다는 것입니다.
 

할머니집 바로 옆에 살고 있는 변씨 할아버지가 1980년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 시행 때에 앞마당 할머니의 삼밭과 오촌 할아버지가 사시던 별 채의 땅을 본인 명의로 해 놓았답니다. 할머니의 그 밭은 온갖 채소들을 씨 뿌려 자식들의 양식을 만드신 소중한 밭이었지요.
 

백령천지가 다 알고 그 분 자식들도 다 아는 최경림 면장네 땅이라는 사실인데 말입니다. 자식들이 인천으로 이주를 하면서 백령 섬을 나와버린 사이 설마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오래전부터 찾을 궁리로 많은 시도를 해도 요지부동. 남의 땅에다 말뚝을 박아놓고 있는 걸 보면 속상하기 그지없어 철조망을 끊어놓고도 싶었습니다.

 

아! 오촌 할아버지... 대장간은 흔적도 없고 굴뚝만이 남아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아 볼 뿐입니다.


<오촌할아버지의 대장간. 굴뚝만 남아 지나간 시간을 지키고... - 29 x21 cm 종이위에 먹 펜>

(글·그림 최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