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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반다방

백령도 전설 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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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전설

동국여지승람 강령현 조에 의하면, 백령도는 고구려때에는 ‘곡도(鵠島)’라고 하였고, 고려때에는 ‘백령진(白翎鎭)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조선 세종 10년에 영강과 백령을 통합하여 강령진이 되고, 뒤에 강령현이 되었다고 한다. 백령도는 조선 세종 때에는 해주목사(海州牧師)가 관할하였다. 조선 중기에는 황해우도에 소속되어 옹진에 설치된 병마절도사령에 귀속되었다. 그래서 옹진에서 백령도에 행수군첨절제사를 파견하였다. 조선 말엽 전국이 23부로 구성될 때 해주부에 속해 있다가, 13도가 설치되고 나서 일제 말까지는 황해도 장연군 백령면으로 내려왔다. 백령도와 관련된 문헌 기록으로는 맨 먼저 [삼국유사] ’진성여왕 거타지‘조의 기록을 들 수 있다. 신라 진성여왕 때의 아찬 양패는 왕의 막내아들이었다. 당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후백제의 해적들이 진도(津島)에서 길을 막는다는 말을 듣고 활 잘 쏘는 사람 50명을 뽑아 따르게 하였다. 배가 곡도(鵠島)에 이르니 풍랑이 크게 일어나 10여 일 동안 묵게 되었다. 양패는 이것을 근심하여 사람을 시켜서 점을 치게 하니, 섬에 있는 신지(神池)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그래서 못 위에 제물을 차려 놓으니, 못의 물이 한 길이 넘게 치솟았다. 그 날 밤 양패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활 잘 쏘는 사람 하나를 이 섬에 남겨 두면 순풍을 얻을 것이라 하였다. 양패가 잠에서 깨어 그 일을 좌우에게 말하고, “주구를 남겨 두는 것이 좋겠소?” 하고 물으니, 여러 사람이 말했다. “나무 조각 50개에 각각 저희들의 이름을 써서 물에 가라앉는 것을 보고 제비를 뽑는 것이 좋겠습니다.” 양패는 그 말대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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