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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인천이발소


인천이발소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교수 2020.01.17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실내건축과 부교수.jpg한 달에 한 번꼴로 이발소에 간다. 한때 미용실에 가보기도 했고, 남성 커트 전문점을 방문했지만 원하는 머리모양을 만들어주지 못해 다시 이발소를 찾기 시작한 지 30년이 넘어간다. 이발소에서 머리를 다듬던 남자들이 미용실을 출입하고, 전문체인점이 들불처럼 번지던 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이발소가 사라졌다. 그나마 남아 있는 이발소도 대부분 고령의 이용사들이 운영하고 있어 머지않은 시기에 자취를 감출 운명이다. 이발소, 이용원, 이발관, 미발관 등 다양한 이름의 이발소는 이제 힘이 빠진 모습으로 골목을 지킨다. 호시절 이발소는 동네의 온갖 뉴스가 모이고 흩어지는 커뮤니티 공간이자, 라디오를 듣고 그림을 관람하던 문화공간이었다.

우리나라 이발소의 시작이 규명되지 않은 것처럼 인천에서 언제 이발소가 시작됐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1898년 1월 인천에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이발소 6개소와 일본인 이발사 10명이 활동 중이었다. 이 당시 이발요금은 18전, 면도는 6전으로 쇠고기 한 근 값(20전)과 비슷했다. 1924년 35개소(우리나라 사람 12, 중국인 8, 일본인 15)에 이어 1938년에는 46개소로 늘어났다. 인천에 거주하던 중국인들도 가위와 면도, 식칼 기술을 일컫는 삼도업에 종사했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이발소는 저렴한 요금을 바탕으로 막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었다. 청관을 넘어 우리나라 사람과 일본인 거주지에도 영업점을 열어 한국인 이발소와 일본인 이발소를 위협했다. 이에 총회에서 이발요금 단일화를 시도했으나, 일본인과 중국인 사이에 분규가 발생해 조합장에 당선됐던 일본인이 사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저렴한 요금으로 손님을 끄는 중국인 이발소가 눈에 거슬렸던지, 외리 173번지에 위치한 중국인 경영 쌍발당(雙發堂)이라는 이발소에서 귀를 후비다 손님 귀에 피를 낸 사건이 기사로 다뤄지기도 했다. 당시 이발소를 관할하던 경찰서 위생계에서는 귀 후비기와 코털 깎기를 금지하고 있었다. 중일전쟁 이후 숫자가 줄기 시작한 중국인 이발소는 1942년 5개로 감소했고, 해방 무렵에는 모두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인천에서 영업하던 이발소 상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위생과 방역 면에 우수했으며, 한국인 이발사들은 뛰어난 이발 기술과 힘을 갖고 있었다. 1924년 2월 경기도경찰부가 시행한 이발사시험에서 인천지역 지원자 17명 중 10명이 합격했으며, 1등부터 6등까지가 우리나라 사람이었다. 또한 1934년 8월에는 인천지역 이발소 종업원 전원이 1일 노임을 모아 이재민에게 기부하기도 했다.

1938년 1월에 열린 인천이발업조합 총회에서는 조합장은 설립 이래 15년간 일본인만 가능하다는 규정을 개정해 강화이발관(송현동) 주인인 조상용을 조합장으로 선출했다. 직전 조합장은 중앙동에서 쯔보이 미발관(坪井美髮館)을 운영하던 쯔보이(坪井)였다.

당시 이발소는 짭짤한 수익이 보장된 업종으로 인천 시내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이발을 해준 무허가 이발사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고, 금곡리 6번지 동흥이발관에서 일하던 직원이 이발 기구를 훔쳐 소사역 근처에서 팔려다 체포되는 일도 벌어졌다.

일상생활에서 이발은 필수불가결한 활동이다. 미용실이나 최근에 등장한 바버숍에 비해 낡은 공간인 이발소에는 아직도 나이든 남성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부산시는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한 업종 중에 소비행태 변화로 사라지는 가게를 지원하는 생활밀접 업종 경영환경 개선사업을 추진 중이다. 재작년에는 이발소, 작년에는 문구점을 선정해 지원했다. 사업성과를 모아 부산골목마켓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적극적으로 골목상권 살리기에 나서고 있는 모양이다. 인천에서도 이보다 앞서 기초자치단체가 이발소 부활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가시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발소를 중심으로 골목상권이 부활하는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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