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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신일철공소


신일철공소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교수 2019.11.29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실내건축과 부교수.jpg전통문화를 주제로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연작으로 발행한 ‘빛깔있는 책들’시리즈가 있다. 어쩌다 서점에 들르면 으레 신간을 살펴보고 사 모으던 책이다. 그 중에 ‘한국의 배’라는 제목으로 전통 배를 다룬 책에 실린 인천에서 촬영된 거북선 사진을 보고 적잖이 흥분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니! 인천에 거북선이 정박했다고?" 30년 가까이 지난 일이라 잊고 지내다가 최근 신일철공소 사태를 겪으면서 오랜 세월 책장만 차지하고 있던 책을 꺼내 다시 살펴봤다.

거북선이 촬영된 흑백사진 설명으로 ‘전라좌수영 거북배이며, 1795년 싸움배이다’라는 설명이 달려있다. 거북선 실물 사진으로 보기 쉽지만, 본문에 모형이라는 설명이 있다. 인천에서 만든 거북선 모형사진이다. 그 경위가 궁금해 관련 자료를 검색하니, 거북선과 관련된 인천 기록 두 건이 나왔다. 앞서 언급한 거북선은 1971년 화수동에 있던 대림조선소에서 원형의 ½ 크기로 건조한 배이다.

김진규 감독의 영화 ‘이순신’(1971) 촬영에 사용한 다음 해군사관학교에서 1979년까지 전시했었다는 말이 전한다. 이 거북선을 지은 대림조선소에 대한 내용은 여전히 숙제다. 이보다 앞선 1969년 3월 25일자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현충사 거북선(실물크기의 1/6)을 제작할 때도 인천 조선 기술자가 참여해 선체를 건조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인천 화수, 만석부두 일대는 우리나라 목선 건조와 수리에서 으뜸이었던 곳이다.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지리적으로 큰 조선소가 들어서길 어려운 탓에 대형선박보다는 주로 연안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목선제작과 수리가 번성했다. 매일신보(1943.4.3) 기사에서 우리나라 조선업 입지여건을 분석하면서 목선 건조에서 자재, 인력, 지리적 여건이 유리한 지역으로 인천, 부산, 목포, 군산, 해주 등을 꼽았다. 연안에서 어획한 수산물을 실은 배가 드나들던 화수, 만석부두 일대에 입지한 철공소의 대부분은 선박과 관련돼 있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당당히 한몫을 차지하던 목선이 건조 기간이 짧고, 선체가 가벼운 FRP배에 밀려 점차 사라지면서 한때 20여 개에 달했던 철공소도 하나 둘 문을 닫았다.

목선건조와 수리에 사용되는 배 못을 만들던 신일철공소는 화수, 만석동이 거쳐 온 역사가 담긴 증표였다. 오랫동안 인적이 끊겨 건물은 낡고, 철공소 안에 있는 장치와 시설은 허물어져 있었지만, 존재만으로도 상징적 가치가 충분했다. 동구청은 소중한 문화유산을 11월 9일 기습적으로 철거해버렸다. 낡은 건물은 수리가 가능했고, 일부 허물어진 화덕도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상태였다. 지역의 정체성이 서린 문화유산을 단 몇 분 만에 부쉈다. 40년 넘게 쌓인 역사의 가치가 그렇게 사라졌다.

인천시 동구 도시유적위원회에 두 차례 참석해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철거 부당성을 주장했지만, 허사였다. 동구청이 제시하는 철거 이유 가운데 납득할 만한 사유는 애초에 없었다. 처음부터 철거를 결정하고 유적위원회라는 절차적 요건을 갖추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인천의 근대문화유산을 지키자고 외치지만, 허공으로 사라지는 공허만 말일 뿐 실질적인 개선은 없다. 산업유산 보존활용 포럼을 연달아 개최하고, 조례를 제정하고, 건축자산 조사에 나서면 뭐하나. 올해만 해도 신일철공소와 함께 부평 아베식당, 미쓰비씨 사택 일부 등 지역의 상징과도 같은 근대문화유산이 사라졌다. 철거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일도 지친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장하는 이가 쓴 글은 축제에 쓰면서, 정작 지켜야 할 문화유산은 없애버리는 역사인식 부재 행정을 언제까지 봐야하는지 안타깝다. 고등학생들이 나서 미쓰비씨 사택을 지켜달라고 호소하는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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